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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티나 로제티, 생일

     

    내 마음 물오른 가지에 둥지를 틀고

    노래하는 새,

    내 마음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줄기가 흰 사과나무,

    내 마음 잔잔한 바다에서 헤적이는

    무지갯빛 조가비,

    내 마음 이 모든 것보다 더 기쁘네.

    내게 사랑이 찾아왔기에.

    비단과 솜털로 짠 잔칫상을 올려줘요.

    다람쥐 모피와 자줏빛 커튼을 거기에 드리워요.

    거기에 비둘기와 석류,

    눈이 백 개 달린 공작새를 수놓아줘요.

    금빛 은빛 포도송이도 꾸며 넣고

    잎사귀와 은빛 백합꽃도 넣어줘요.

    내 인생의 생일을 맞았으니까요.

    내 사랑이 내게 찾아왔으니까요.


    황재광 역

  • 안토니 스로님스키, 햄릿의 병

     

    오랫동안 나는 형의 검은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는데

    눈에 익은 그 눈동자, 얼굴은 비록 그렇지 않았지만

    그가 말문을 열었을 때, 낱말 하나하나의 무게를 달아 가며 말을 했을 때

    레닌그라드에서, 우중충한 마라트 거리에서

    마이클, 훼니 아줌마, 루드빜 아저씨의 아들

    (그것은 어린 시절 동경의 참맛을 새삼 일깨워 주는 이름들)이

    단호하게, 그리고 심상치 않게 말을 가로막다.

    그러나 그와는 사촌간, 아주 가까운 친척.

    마그니토고르스크와 우랄 사람들, 우리 편이 아니면 우리의 적.

    스탈린과 당과 무한한, 끊임없는 노동

    5개년 계획. 다섯 살 나이 시절에

    우린 편지를 주고받곤 했다. 마이클은 아파 보임.

    눈빛은 아직 젊은이, 그러나 머리카락은 때아닌 흰머리

    그러나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맡은 일 충실히

    너는 조국에 몸 바쳤고, 힘써 몸 바치고자 했다.

    그리고 너는 말한다. “안녕히 주무셔요. 왕자님,” “호레이쇼도 안녕히”


    김정환 역

  • 고트프리트 벤, 앙리 마치스·수선화

     

    꽃다발―잎이 없네.

    항아리―단지가 퍼진 것 같네,

    ―수선화,

    프로세르피나 女神에게 바침―.


    김주연 역

  • 로버트 프로스트, 전화

     

    『오늘 이곳을 떠나 마음껏 걸어 보았어요.

    가보니까 시간은

    아주 고요히 흐르고 있었고

    꽃에 머리를 기대고 있노라니

    당신 말씀이 들렸어요.

    말씀 안했다고 하지는 마세요

    나는 들었으니까요―

    당신은 창가에 있는 꽃에서 말씀했지요―

    무어라고 했는지 기억하세요?』

    『당신이 무슨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는지

    먼저 말씀해 보세요』

    『꽃이 있기에 벌을 쫓아 버리고

    머리를 기댔지요

    꽃줄기를 잡고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무슨 말이 들린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뭐였죠? 내 이름을 부르셨나요?

    아니면―

    누군가 「와요」 하고 말했지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들었어요』

    『마음 속으로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는데요』

    『하여간 그래서 제가 왔지요』


    정현종 역

  • 앙리 미쇼, 斷片들

     

    동물원 소장의 아들이 물갈퀴 같은 발 모양을 하고 태어나는 일은 흔하다. 어쨌든 그것은 모든 불행이 그런 것처럼 하나의 놀라움이다.

    어린애는 북극지방으로 쫓겨났다. 사람들은 그 애가 거기서 훨씬 적합한 자연의 모습과 어울리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밀을 지니고 있었던 가정은 굉장히, 엄청나게 은밀하게 되었다. 누가 과연 동물원 소장의 가정을 속속들이 알았노라고 떠벌릴 수 있겠는가?

    *

    사람들이 모두 얼굴을 지니고 다니지 않는다면 정말 사람들을 덜 미워할 수 있을 텐데.

    *

    뿔 달린 가오리들은 나무를 쓰러뜨리지 못한다. 그것들은 나무에 기어오르지도 못한다. 자연에는 경건한 분리가 남아 있다.

    *

    여덟 살 때에도 나는 아직 식물처럼 단장되기를 꿈꿨다.

    *

    사람들은 소리지르는 자의 입을 막기 위해 소리를 지른다. 기린을 보여주는 사람은 난장이를 숨긴다. 곰을 보여주는 사람은 대머리를 감추는 것이다.

    *

    낡은 멜빵을 느슨하게 하는 것보다는 젊은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것이 한결 마음 가볍게 한다.

    *

    꼬리 대신 채찍을 가졌더라도 말은 마부가 되지는 않으리라.

    *

    태아 적의 추억 : 어느날 나는 입을 갖기로 결심한다. 망할! 금새 나는 꼼짝 없이 사람의 애기 모양에 가까와져 버렸던 것이다.

    *

    멜론 안에서는 심장이 뛰고 있었다.

    *

    다 잘돼 가네, 라고 사형집행인이 말한다. 불행의 형편이 펴진다.

    *

    잠자리의 내장 안에서 그는 일 년 전에 사라진 불쌍한 어린애를 되찾았다.

    그 감격! 아비저로서의 충격! 그 어리둥절함!

    그후로 그는 그토록 열광했던 곤충학과 완보류(緩步類)에 대한 연구와, 흐릿한 안경 뒤로 감춰 버리게 될 이 세상의 정녕 끔찍한 장면을 내팽개쳐 버린다.

    아니, 이제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보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미친사람 같다.

    그러나 내 묻건대 아무리 금수만도 못한 자라도 그의 입장에서라면 누가 그렇게 되지 않겠는가?

    *

    사람의 귀는 잘 보호되어 있지 않다. 마치 이웃 사람들이 염두에 없었던 것 같다.

    *

    발은 얼굴을 칭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해변을 칭찬한다.

    *

    바늘 하나를 집어내려 하는 잠수부는 울거나 치를 떤다.

    *

    물 밖에서 밤을 보내는 물고기들을 위한 부드러운 진창이라는 여인숙.

    *

    대사 부인, 속에는 찌푸린 얼굴이 있다.

    *

    면도기를 면도할 줄 아는 사람은 지우개를 지울 줄도 알겠지.

    *

    장례식은 늪지에서 벌어져야 하리라.

    사자를 뒤따르는 생자들도 곤경에 처해야 올바르지 않겠는가.

    *

    자신의 광기를 숨기는 자는 소리없이 죽는다.

    *

    개미 앞에서 몸을 숙인 자는 사자 앞에서는 더 이상 몸을 숙일 수조차 없다.

    *

    나는 컴컴한 벽난로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석탄을 대주고 나는 석탄 연기를 공급해 준다.

    *

    떼를 지어 노래하는 자는 사람들이 그에게 원하기만 하면 자기 동생이라도 감옥에 처넣을 것이다.

    *

    쥐에 붙어 사는 벼룩이 고양이를 무서워한다는 증거는 없다.

    *

    神은 대장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

    거미의 지혜는 파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

    자기의 악마를 물리친 자는 그의 천사로 우리를 성가시게 한다.

    *

    귀머거리들까지도 대화를 한다.

    *

    눈이 믿을 때에도 손은 믿지 않는다.

    *

    예민한 사람의 마음은 사랑을 하기에는 너무 고통을 받는다.

    *

    같이 베를 짤 줄 아는 사람들만이 결혼할지어다.

    *

    슬픔은 보상된다.

    *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지상에 사람이 많을수록 더욱 분노도 많다.


    김현 역

  • 폴 엘뤼아르, 1943년 9월 21일의 꿈

     

    나는 꿈을 꾸었네

    티롤의 거리를 빠르게 걷고 있었지.

    더 빨리 가기 위해서 나는 네 발로 걸었고

    나의 손바닥은 굳어 있었지

    아름다운 시골 아낙네들은

    그곳의 풍습에 따라

    내 앞을 지나칠 때마다

    부드러운 몸짓으로 인사를 하였지

    그러자 나는 감옥에 도달하였네

    창가엔 리본들이 걸려 있었고

    문은 활짝 열려 있고

    감옥은 텅텅 비어 있었지

    나는 그곳에 살고

    내 마음대로 들어가고 나올 수 있었지

    나는 그곳에서 일할 수도 있고

    나는 그곳에서 행복해질 수도 있었지

    외양간 아래쪽에

    리본을 두른 검은 말들이

    만족한 나의 기쁨을 기다리고 있었고

    햇빛에 싸인 물방울처럼

    벽들은 떨고 있었지

    광장 위에서 아낙네들은

    이유없이 웃고 있었고

    한여름 꽃들 사이에

    白雪의 축제가 있었네

    맑은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며

    경쾌하고 빠른 걸음걸이로 나는 다시 길을 떠났지

    햇빛을 담뿍받고 아무도 없이 환한

    똑같은 감옥에 나는 도착하였네

    나는 놀라 잠이 깨었지

    어떤 남자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오생근 역

  • 장 콕토, 마음의 무게

     

    개의 주둥이처럼 의젓하게 샘물이 흐른다. 나를 겁먹게 한 장미는 결코 웃지 않는다. 그리고 나무는 서서 잔다. 나무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나무는 제 그림자에게 명령을 내린다. 잠자라. 그래서 푹 쉬어라. 오늘 저녁에 우린 또 떠나야 하니까. 그리하여 저녁마다 그림자는 나무가지에 올라가고, 그래서 그들은 떠나는 것이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벽에다 글씨를 끄적거린다.

    내가 내 마음을 볼 수 있다면, 난 감히 네게 미소 짓지 못하리라. 내 마음은 달도 없는 이 한 밤에 너무 괴로와하고 있다. 너를 베고 누워서, 불길한 소식을 전하러 오는, 내 마음의 달려오는 질주를 나는 노려보고 있다.


    이가림 역

  • 테라야마 슈지, 나의 이솝

     

     1

    초상화 속에

    그만 실수로 수염을 그려 넣어 버렸으므로

    할 수 없이 수염을 기르기로 했다.

    문지기를 고용하게 되어 버렸으므로

    문을 짜 달기로 했다.

    일생은 모두가 뒤죽박죽이다

    내가 들어갈 묘혈(墓穴)파기가 끝나면

    조금 당겨서라도

    죽을 작정이다.

    정부가 생기고 나서야 정사를 익히고

    수영복을 사면 갑자기 여름이 다가온다.

    어릴 때부터 늘 이 모양이다.

    한데

    때로는 슬퍼하고 있는데도 슬픈 일이 생기지 않고

    불종을 쳤는데도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여

    개혁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바지 멜빵만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는 것이다.

     2

    눈물은

    인간이 만드는 가장 작은 바다이다.

     3

    개가 되어 버렸다.

    법정에서 들개사냥꾼이 증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누가 개가 되어 버렸을까?

    개가 되기 전에 당신은 나의 아는 사람 중의 누구였읍니까.

    크로스워드 퍼즐 장인 교환처(交換妻)

    선원조합 말단회계원인 부친

    언제나 계산자를 갖고 다니는 여동생의 약혼자

    수의(獸醫)가 못되고 만 수음상습자 숙부

    하지만 누구든 모두들 옛날 그대로 건재하다.

    그러면 개가 되어버린 사람은 누구인가?

    세계는 한 사람의 개백정쯤 없어고 가득 찰 수 있지만

    여분인 한 마리의 개가 없어도

    동그랗게 구멍이 뚫리는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다―윈의 「진화론」을 사러 갔다가

    한 덩이 빵을 사서 돌아왔다

     4

    고양이……다모증(多毛症)의 명상가

    고양이……장화를 신지 않고는 아이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 동물

    고양이……먹을 수 없는 식육류

    고양이……잘 안 써지는 탐정소설가

    고양이……베를리오즈 교향악을 듣는 것 같은 귀를 갖고 있다.

    고양이……재산없는 쾌락주의자

    고양이……유일한 정치적 가금(家衾)

     5

    중년인 세일즈맨은 갑자기 새로운 언어를 발견했다.

    마다가스칼語보다 부드럽고 셀벅로찌어語보다도

    씩씩하고 꿀벌의 댄스 언어보다 음성적이며 의미는

    없는 것 같고 표기는 될 것 같으면서도 안되고 새들에게는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새로운 언어다.

    <새로운 세계>

    라고 세일즈맨은 그 언어로 말을 하고 나는 해석하여 감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중년인 세일즈맨은

    가방을 든 채 벤취에서 죽고

    친척도 없이 신분증명서만이

    그의 죽음을 증명했다.

    나는 그가 발견한 새로운 언어로써

    그의 죽음을 증명했다.

    말을 걸어 봤으나

    아이들은 웃으며 도망치고

    일꾼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빵집에서는 빵도 팔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세계>

    가 새로운 언어로 되어 있는 것인지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세계>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것인지를 알기 위하여

    말을 거는 것을 그만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

    라는 새로운 언어가 통할 때까지

    지나가는 그들

    사물의 folklore

    가라 앉는 석양을 향해

    나는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6

    불행이란 이름의 고양이가 있다.

    언제나 나에게 바싹 붙어 있다.

     7

    도포이송한 와우여

    한도포이송 여와우

    송도포이한 우여와

    포송이한도 우와여

    여우와 한 송이 포도를 종이에 쓰고

    한 자씩 가위로 잘라

    흐트렸다간 다시 아무렇게나 나열해 봅니다.

    말하기 연습은

    적적할 때의 놀이입니다.


    박현서 역

  • 로버트 프로스트, 풀베기

     

    숲 옆에서는 한가지 소리밖에 아무소리도 없었는데,

    그것은 내 긴 낫이 땅에 속삭이는 소리였다.

    무얼 속삭였냐고?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햇빛이 뜨겁다거나

    고요하다는 얘기였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소리내어 말하지 않고 속삭였겠지

    한가해서 꿈을 꾸고 있었던 것도

    妖精한테 홀려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실은 어쩔수 없는 애착에 못이겨

    잎 끝이 연한 꽃들(파란 난초)도 없지 않은

    풀 무성한 습지를 손질하면서

    빛나는 초록 뱀을 놀라게도 하는 것이다.

    속삭인 말은 勞動이 알고 있는 가장 사랑스럽고 즐거운 꿈,

    나의 긴 낫은 속삭이면서 풀을 베어놓고 있었다.


    정현종 역

  • 다카하시 신키치, 두꺼비

     

    두꺼비는 비행기를 탄 순간 벌써 런던에 와 있다라고

    해봐야 말이 되지 않는다.

    두꺼비는 거리를 느끼지 않게 되어 있다.

    두꺼비의 배와 사람의 배와는 아무런 거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배 뿐만은 아니다.

    한 그루 가로수와 두꺼비 사이에도 거리는 없었다.

    두꺼비는 수축되어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런던도 동경도 두꺼비의 물장난하는 발밑에서

    동시에 짓밟히고 있는 시가지이다.

    거리가 없어 아무런 소리도 두꺼비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늪가에 바가지와 두꺼비가 포개어져 있다.


    박현서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