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백소영

  • 테라야마 슈지, 나의 이솝

     

     1

    초상화 속에

    그만 실수로 수염을 그려 넣어 버렸으므로

    할 수 없이 수염을 기르기로 했다.

    문지기를 고용하게 되어 버렸으므로

    문을 짜 달기로 했다.

    일생은 모두가 뒤죽박죽이다

    내가 들어갈 묘혈(墓穴)파기가 끝나면

    조금 당겨서라도

    죽을 작정이다.

    정부가 생기고 나서야 정사를 익히고

    수영복을 사면 갑자기 여름이 다가온다.

    어릴 때부터 늘 이 모양이다.

    한데

    때로는 슬퍼하고 있는데도 슬픈 일이 생기지 않고

    불종을 쳤는데도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여

    개혁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바지 멜빵만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는 것이다.

     2

    눈물은

    인간이 만드는 가장 작은 바다이다.

     3

    개가 되어 버렸다.

    법정에서 들개사냥꾼이 증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대체 누가 개가 되어 버렸을까?

    개가 되기 전에 당신은 나의 아는 사람 중의 누구였읍니까.

    크로스워드 퍼즐 장인 교환처(交換妻)

    선원조합 말단회계원인 부친

    언제나 계산자를 갖고 다니는 여동생의 약혼자

    수의(獸醫)가 못되고 만 수음상습자 숙부

    하지만 누구든 모두들 옛날 그대로 건재하다.

    그러면 개가 되어버린 사람은 누구인가?

    세계는 한 사람의 개백정쯤 없어고 가득 찰 수 있지만

    여분인 한 마리의 개가 없어도

    동그랗게 구멍이 뚫리는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다―윈의 「진화론」을 사러 갔다가

    한 덩이 빵을 사서 돌아왔다

     4

    고양이……다모증(多毛症)의 명상가

    고양이……장화를 신지 않고는 아이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 동물

    고양이……먹을 수 없는 식육류

    고양이……잘 안 써지는 탐정소설가

    고양이……베를리오즈 교향악을 듣는 것 같은 귀를 갖고 있다.

    고양이……재산없는 쾌락주의자

    고양이……유일한 정치적 가금(家衾)

     5

    중년인 세일즈맨은 갑자기 새로운 언어를 발견했다.

    마다가스칼語보다 부드럽고 셀벅로찌어語보다도

    씩씩하고 꿀벌의 댄스 언어보다 음성적이며 의미는

    없는 것 같고 표기는 될 것 같으면서도 안되고 새들에게는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새로운 언어다.

    <새로운 세계>

    라고 세일즈맨은 그 언어로 말을 하고 나는 해석하여 감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중년인 세일즈맨은

    가방을 든 채 벤취에서 죽고

    친척도 없이 신분증명서만이

    그의 죽음을 증명했다.

    나는 그가 발견한 새로운 언어로써

    그의 죽음을 증명했다.

    말을 걸어 봤으나

    아이들은 웃으며 도망치고

    일꾼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빵집에서는 빵도 팔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세계>

    가 새로운 언어로 되어 있는 것인지 새로운 언어가

    <새로운 세계>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것인지를 알기 위하여

    말을 거는 것을 그만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새로운 세계>

    라는 새로운 언어가 통할 때까지

    지나가는 그들

    사물의 folklore

    가라 앉는 석양을 향해

    나는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말을 건다

     6

    불행이란 이름의 고양이가 있다.

    언제나 나에게 바싹 붙어 있다.

     7

    도포이송한 와우여

    한도포이송 여와우

    송도포이한 우여와

    포송이한도 우와여

    여우와 한 송이 포도를 종이에 쓰고

    한 자씩 가위로 잘라

    흐트렸다간 다시 아무렇게나 나열해 봅니다.

    말하기 연습은

    적적할 때의 놀이입니다.


    박현서 역

  • 로버트 프로스트, 풀베기

     

    숲 옆에서는 한가지 소리밖에 아무소리도 없었는데,

    그것은 내 긴 낫이 땅에 속삭이는 소리였다.

    무얼 속삭였냐고? 나는 잘 모르겠다.

    아마 햇빛이 뜨겁다거나

    고요하다는 얘기였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소리내어 말하지 않고 속삭였겠지

    한가해서 꿈을 꾸고 있었던 것도

    妖精한테 홀려 있었던 것도 아니다

    실은 어쩔수 없는 애착에 못이겨

    잎 끝이 연한 꽃들(파란 난초)도 없지 않은

    풀 무성한 습지를 손질하면서

    빛나는 초록 뱀을 놀라게도 하는 것이다.

    속삭인 말은 勞動이 알고 있는 가장 사랑스럽고 즐거운 꿈,

    나의 긴 낫은 속삭이면서 풀을 베어놓고 있었다.


    정현종 역

  • 다카하시 신키치, 두꺼비

     

    두꺼비는 비행기를 탄 순간 벌써 런던에 와 있다라고

    해봐야 말이 되지 않는다.

    두꺼비는 거리를 느끼지 않게 되어 있다.

    두꺼비의 배와 사람의 배와는 아무런 거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배 뿐만은 아니다.

    한 그루 가로수와 두꺼비 사이에도 거리는 없었다.

    두꺼비는 수축되어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런던도 동경도 두꺼비의 물장난하는 발밑에서

    동시에 짓밟히고 있는 시가지이다.

    거리가 없어 아무런 소리도 두꺼비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늪가에 바가지와 두꺼비가 포개어져 있다.


    박현서 역

  • 르네 샤르, 돈네르바흐 뮐

     

    1939년 겨울

    안개 낀 십일월, 숲 아래로 마지막 오솔길의 종소리가 저녁을 가로질러 사라지는 소리,

    스치듯 지나가는 부재로부터 족쇄로의 귀환을 갈라놓는 바람의 아득한 서원誓願을 들어라.

    유순한 짐승들의 계절, 악의라고는 없는 여자아이들의 계절, 너희들에게는 내 힘과는 상반되는 힘이 있다. 너희들의 눈은 내 이름, 세상이 내게 잊기를 요구하는 이름을 닮았다.

    너무나 사랑한 한 세상의 조종弔鐘, 내 귀에는 괴물들이 웃음기 없는 땅 위에서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내 진홍빛 누이가 땀에 젖어 있다. 격앙된 내 누이가 무기를 잡으라고 촉구한다.

    호수의 달이 호숫가에 발을 내려딛고, 여름의 부드러운 식물성 열기가 물결 위에 내리면 물결은 그 열기를 강바닥의 깊은 재를 향해 휩쓸어 간다.

    포신의 추적을 받는,

    —삶, 드넓은 한계—

    숲속의 집이 환히 불 밝혀졌다.

    우레, 개울, 방아.


    심재중 역